top of page

히브리서 4장

작성자 사진: 주언약교회주언약교회

2021년 9월 11일

히브리서 4장



[말씀읽기]

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생기지 않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십시오.

2 그들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그 말씀을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과 같이,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실상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끝마치셨으므로, 그 때로부터는 안식이 있어 온 것입니다.

4 일곱째 되는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하나님께서 일곱째 되는 날에는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 하고,

5 또 이 곳에서는 그는 다시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6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어떤 날을 정하시고, 이미 인용한 말씀대로, 오랜 뒤에 다윗을 시켜서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다른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을 씁시다.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 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예수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14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킵시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말씀묵상]

4장은 3장 마지막에 언급한 안식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안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즉 들은 말씀, 복음에 대해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삶 속에서 확인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믿는 우리들, 신자들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3장에서 인용했던 시95편의 구절 몇 개를 다시 인용합니다. 안식이 무엇이고 이 안식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지만 실은 창조 때 안식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제 7일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면서 모든 피조물에 안식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물이 안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안식은 깨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 그의 은혜로 사는 것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안식은 그냥 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가나안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인간 쪽에서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약속으로 가나안을 주셨고 만나를 먹으며 광야의 삶을 사는 과정을 통하여 안식을 회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함으로 인해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안식을 얻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더 확인될 뿐이었습니다. 물론 가나안을 들어간 여호수아가 안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이 진짜였다면 후에 시95편에서 다윗이 오늘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7-8절).

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이 어떻게 주어진다고 합니까?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시작이며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11절에 말하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과 함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완고하지 않는 것은 애쓴다고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은 굳어졌다는 말입니다. 고집불통이고 악해진 모습입니다. 왜 마음이 완고해집니까? 내 것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힘으로 부드럽게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12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의 입장에서 표현한다면 모든 죄악들이 다 드러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식을 누리는 것은 내가 편안하고 평온한 것이 아니라 내 속의 모든 죄악들이 확인되고 더럽고 추한 자신이 보여질 때 갖게 되는 것이 안식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13절에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을 때입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의 모습입니다. 안식이 회복된 모습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이런 모습의 자신을 볼 수 있습니까? 아니면 더 감추어지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죄악을 보게 됩니까? 신자들에게 말씀은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차도, 삼차도 자신에게 주어집니다. 남에게 주어지는 말씀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벌거벗기는 말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드러나기에 14절에 큰 대제사장이 등장합니다. 신자는 이 큰 대제사장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경험하시고 모든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 앞으로 늘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는 삶이길 바랍니다.

조회수 34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enta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