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4일
히브리서 5장
[말씀읽기]
1 대제사장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을 수행하라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예물과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으므로, 무지해서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하실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그 연약함 때문에, 그는 백성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를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고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경외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얻었습니다.
8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변절을 경고하시다
11 멜기세덱을 두고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여러분의 귀가 둔해진 까닭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12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다시금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물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린 아기이므로, 옳은 가르침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물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씀묵상]
5장은 앞서 나온 예수님께서 큰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4절은 일반적인 구약의 대제사장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5-10절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먼저 구약의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것은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는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용납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연약에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도 제사를 드리러 오는 자와 같이 죄가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3절에 속죄제를 드리러 오는 백성과 같이 자신도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제사를 집도할 대제사장이 무흠해야 할 것 같은데 그도 미혹되고 무지한 백성들과같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바로 죄인의 죄악을 그대로 담당하시고 스스로 죄인이 되셔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제사장이 죄인과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존귀함이라고 말합니다. 죄인이 죄인을 위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기가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특별히 부르신 자이기 때문에 그 자리가 존귀하다고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그것을 취하신 자리가 아니라 시2: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낳으신 아들로서, 시110:4절의 말씀대로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주어졌기에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구약의 제사장보다 훨씬 더 존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7-8절에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내용이 나오는데 육체에 계셨다는 말은 인간이 되시고 죄인의 모습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감당해야 할 대제사장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사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고통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들으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 기도한 결과가 그대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나 마나 아닌가요?
신자들의 기도는 어렵고 힘든 것, 고난과 죽음 등을 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당연히 세상적인 기준에 따른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능력의 하나님께 어려움을 기도했지만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개인적 안위와 편함을 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존재 의미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이 유혹을 받아 복음에서 떠날 위험에 쳐해 있었고 상황적으로도 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 있었기에 저자는 주님의 고난받으시고 죄인과 같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경험하셨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좀 기운빠지는 말이지만 구원자이신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와 같이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 분이 구원자이신데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9절의 말씀대로 그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럼 순종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어떤 명령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예수님께서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셔서 온전하게 되셨음을 믿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분이며 인간으로부터 주어진 제사장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자들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예수님의 대제사장이심을 인하여 굳건히 서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깨달음으로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주의 뜻을 붙잡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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