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장

2019년 4월 30일

고린도후서 5장



*말씀읽기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묵상

바울은 신자들의 모습이 겉은 낡아지지만 속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국 성취될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신자의 본질적 모습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좀더 구체적인 예시로 신자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육신에 대해 땅에 있는 장막 집과 앞으로 얻게 될 영원한 집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 일시적이며 없어질 것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과의 비교입니다.

이러한 두 종류의 비교는 늘 신자들의 삶에 존재합니다. 문제는 보이는 것에 대한 포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없어질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성경은 계속 가르치고 있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의 탄식이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5절). 즉 성령을 통해서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의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7절).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확실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육신을 가지고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목표와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목적일 수 없고 주님과 함께 살 것을 목적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9절). 그래서 세상이 기준인 것들을 따라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하여, 몸이 편하고 만족하는 것을 좇을 수가 없습니다. 신자들은 죽을 것이 생명에 삼켜진(4절) 자들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서로 자랑하며 사랑하는 관계인데 이것은 외모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오직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 주체가 내가 아니라 사랑의 주체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베푸신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위한 삶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에 육체대로 알아오던 것을 버린 것입니다. 육체대로 사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자기를 위해, 외모를 자랑하는 목적으로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17절에서는 이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 육체대로 살 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것들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늘 있는 육체적인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새로운 피조물이고 새것이 되었으면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한 것들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계속해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새로운 삶을 사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완전히 다른 천국에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통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비록 신자의 실제 삶이 예전과 다르지 않은 삶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살아내야 할 모습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이러한 상황이기에 신자의 삶이 힘든 것입니다. 전에는 맞고소를 했지만 지금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살피며 세워주며, 전에는 나의 옳음을 위해 투쟁을 했지만 지금은 내가 용서를 빌며 화목하게 해야 합니다. 18절에는 아예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합니다. 세상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화목케 하신 것처럼 하라고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과 경향, 생각, 의도, 노력, 사실에 대한 인정 등이 바로 새로운 우리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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