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장

2021년 2월 13일

로마서 10장



[말씀읽기]

1 형제자매 여러분,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내 동족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2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해주시려고 율법에 끝마침이 되셨습니다.

5 <만민이 구원에 이르다>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6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의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 말아라.(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7 또 누가 지옥에 내려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도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이다.)"

8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11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

15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성경에 기록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f) "주님, 우리에게서 들은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18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19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 ?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너희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미련한 백성들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내겠다."

20 또한 이사야는 담대하게 이렇게 전하였습니다."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21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말씀묵상]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식없이 열심을 냄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가 만들어지는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4절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율법을 통한 의가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의, 잘남, 자랑, 훈장, 업적이 의미없다는 말입니다. 율법주의자, 행위주의자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6-7절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의에 대해 어느 정도로 지식이 없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하늘에 올라가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모셔오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저갱으로 가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모셔 오겠다고 합니다. 율법주의적 사고를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조차도 자신의 의를 만드는 방법으로 행하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기 위해 이렇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의, 즉 구원의 방법은 이러한 행위로가 아니라 입과 마음에 주신 말씀에 대해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9절). 행위와 믿음에 의한 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경고를 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열심을 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심은 좋은데 문제는 이 열심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로 평가되어 업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그 상태와 존재가 어떠한 것인지를 잊은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상황에서 여전히 싸워야 합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자기 의나 옳음의 주장은 거의 의미가 없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들이 알지 못했느냐?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몰라서, 듣지 못해서, 전하는 자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분명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이들도 다 듣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듣고 알고 이해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부정하며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듣고 알고 이해한 주를 부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원을 그렇게 받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인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내가 능력이 있고 얼마든지 해 낼 수 있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 자신이 구원된다는 것에 항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부인되고 포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16절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는 말은 이사야 53: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의 종을 설명하는 첫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언급한 장입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듣고 이해한다고 믿고 따를만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러한 메시야를 누가 따르겠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메시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준과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다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다른 기준으로 인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인본주의적 기준, 죄성에 근거한 기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놀라운 모습을 보이시고 있음을 말합니다. 21절에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고 하십니다.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들에게 가지신 마음입니다. 정말 은혜가 필요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으로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있는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만족을 찾는 자들입니다. 그럴 목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뭔가를 해드리는 입장으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착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삶이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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