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 주언약교회
- 2024년 11월 27일
- 3분 분량
[말씀읽기]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말씀묵상]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기준과 삶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 시대에 대한 전혀 다른 생각으로 인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근거가 되지만 오로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판단함으로 진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통해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아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 외치고 있습니다(11절). 물론 귀신의 외침도 실은 진리에 근거한 고백이 아닌 자신의 자리와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에 나온 고백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예수님을 좇던 무리들의 기준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지도자들이나 귀신이나 무지한 무리들이 다 같은 기준과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호기심과 이익을 따라 반응하고 있는 세상의 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존심, 생존, 이익, 힘, 권력에 좌우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은 결코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될 수도 없고 그렇게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결국 세상의 판단은 예수님에 대해 귀신과 한통속으로 이해하고 모함하기에 이릅니다. 귀신을 쫓고 고침을 보이신 것에 대해 신적인 권능과 하나님 나라의 임함으로 깨닫지 못하고 더 센 귀신의 힘을 빌려 일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뜻과 일하심을 분별하지 못하는 아담적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경고하십니다.
신자들의 분별과 행동지침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하심, 구원을 이루심, 신적인 능력을 행하심 등을 통하여 무엇을 보십니까? 그 능력의 내용이 나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십니까? 만일 병자들을 고침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을 만드시는 것이라면 병든 자들만 찾아 다니셔야 했을 것입니다. 특히 임종을 앞둔 자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원하심은 능력많은 예수님을 좇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성취되고 있으니 주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듣고 깨닫고 믿게 된 자들이 신자입니다. 신적인 능력을 맛보고 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붙잡은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늘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고 사는 자들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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