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2018년 9월 20일

사도행전 3장



*말씀읽기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말씀묵상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치유 사건입니다. 당연히 사건 자체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되는 내용입니다. 지금 초대교회의 처음 모습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있는데 이러한 모습들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알 수 있는 내용은 2장에서 이미 보여준 회개의 역사처럼 성령의 일하심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일어나는 일은 예수님의 약속에 따라 성령께서 오심으로 일어난 일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를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앞서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2:38-40에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면서 걷지 못하는 걸인을 고침도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기이히 여겼지만 베드로는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며 너희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 성령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늘 그래왔던 모습인데 이 사도행전을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일어나는 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은 문제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복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말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사역, 십자가와 부활, 승천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였음을 확증하는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침을 받았다고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 역사가 지금 증명되고 있구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치유 사건을 통하여 베드로가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자신들에게 집중하는 것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치유 자체에도 집중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를 깨우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행하셨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행전의 목적과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들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구원받은 자들이기에 나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행위로는 간구하며 기도할 수 있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하며 만족을 얻어 편안하고 걱정없는 삶을 위한 간구는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어떤 삶으로 인도되는 자인가, 나를 이끄시는 분은 누구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고민 가운데 간구와 기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하시는 것처럼 교회된 모든 성도들의 삶은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성령이 임한 신자이며 주님이 몸된 교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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