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장

2021년 6월 8일

이사야 6장



[말씀읽기]

하나님이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3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시다."

4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집은, 타고 있는 숯을,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1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12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13 주민의 십분의 일이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말씀묵상]

오늘 본문은 보통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는 내용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6장 전체의 문맥 속에서 보면 소명 받는 부분은 일부의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소명받는 장면이 중요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있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이사야가 이렇게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부르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5장까지의 내용에서 유다가 범죄하였고 세상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인해 심판이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5장에서는 ‘화 있을진저’ 하면서 특히 지도자 층에 있던 사람들이 어떠한 죄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의 선포가 유다를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멸망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볼 때마다 두 가지 사실을 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죄와 은혜, 심판과 구원입니다.

1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시대적 배경이 나옵니다. 웃시야의 기록은 왕하 15장과 대하 26장에 나옵니다. 이 때 유다의 상황을 보면 국가적으로 전성기 때를 회복했고 백성들 역시 태평성대를 맛보고 있을 때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번성으로 인해 종교적 부패가 심화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도 식어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치와 향락이 극치에 달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이때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죄인들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하나님을 멀리하며 자기 만족의 삶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이사야를 부르시는 이유입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를 부르시는 장면에 환상이 나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성전과 스랍들의 모습을 보았고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만군의 여호와를 보았다며 소리를 지릅니다.

지금 여호와 앞의 이사야는 유다의 현실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죽어야 할 존재, 죄악으로 가득한 자임을 고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유다나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포로로 잡혀가도록 하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지금까지 추구하던 세상의 가치들이 얼마나 헛된 것들이었는지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망해야 합니다. 망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고 깨닫게 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잘 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도 많고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을 접하면서 다시금 가치 없는 자임을, 정말 배설물과 같은 것에 매달려 사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악을 깨달은 이사야를 천사가 숯으로 입술에 닿게 하자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포합니다. 망해야 할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망하지도 않았는데, 죄인임이 고백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흉내내는 것입니다. 성령을 이용하여 자기 만족을 하는 것입니다. 사명자로 세워지는 것이 내가, 나의 힘이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시켜서 손들고 일어서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가 받은 사명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이사야가 할 일이 이상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서 백성들에게 전할 말이 ‘너희가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전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래야 이들이 완전히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능력이나 이해, 조건에 의해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혀 불가능할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일 때 긍휼이 베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그루터기로 비유합니다. 그루터기는 생명이 없는 남은 나무 밑동입니다. 거기에 거룩한 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생명도 없던 그루터기 같은 존재에서 거룩한 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이 은혜로 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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