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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2019년 4월 18일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읽기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묵상

그 유명한 사랑장입니다. 이것만 볼 때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나오게 된 배경을 빼버리면서 사랑이 어마어마한 능력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사랑이 마지막 절에 말하는 것처럼 어느 믿음의 요소보다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말하기 위해 13장을 서술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바울이 계속 지적하며 바로 잡고자 하는 내용이 분열이었고 그 분열의 내용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해 왔습니다. 각각의 경우마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일하심과 구원의 역사를 깨우쳤습니다.

10장만 봐도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대원칙을 말했습니다. 11장에서는 교회가 하나임을 창조원리로 설명하고 성찬을 통해 하나된 자들임을 설명했습니다. 12장에서는 서로가 다른 것 같지만 한 몸의 지체들로 존재하는 자들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사랑이 없이 하는 모든 신자들의 은사 사용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사랑은 모든 은사의 방편이라는 말입니다.

1-3절까지의 말을 바꿔 말한다면 방언, 천사의 말을 사랑으로 하고, 예언과 믿음의 능력도 사랑으로 하고 구제와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때도 사랑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엄청난 열심과 능력으로 드러났지만 사랑이 없기에 서로를 비방하며 자기 자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여기 드러난 모습을 보면 누구보다도 뛰어난 은사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은사가 사람을 이렇게 사납고 무섭게 만들어버리게 된 이유가 바로 사랑이 없는 까닭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은사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사랑으로 감당하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4-7절까지는 사랑의 긍정적인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말합니다. 사랑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보편적 정의를 말하는 것보다는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보이고 있는 모습에 대한 질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역설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이 은사를 가지고 드러내었던 모습입니다. 참지 못하고 서로 비방하고 온유하지 못했고 시기하며 자랑과 교만을 일삼은 것입니다.

교회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자들입니다. 즉 하나된 자들입니다. 성도들이란 이미 하나된 자들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이 바로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함이 우리 안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도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능력으로 생각했지만 그렇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7절까지가 모두 하지 못한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자들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을 보며 자신의 무능함과 가치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다면,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절망과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모습은 죄인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며 우리가 받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확인되고 고백되지 않아서 고린도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를 비방하며 죽이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우리를 지체 삼으셨는데 지체된 우리가 다른 속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사랑의 잣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부름받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에 대한 서술은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될 수 있는,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 있음을 다시 고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만이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8절 이후에 말하는 내용은 모든 은사가 부분적인 것이며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 폐하고 그치게 된다고 합니다. 받은 은사들이 다 부분적이고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 참으로 허무한 열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 열심은 서로를 미워하게 하고 분열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부족들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랑으로 하나된 자들임을 깨닫고 고백함이 온전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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