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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장

2019년 4월 19일

고린도전서 14장



*말씀읽기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말씀묵상

14장에서는 방언과 예언함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당시 교회의 혼란을 잠재우고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됨은 오직 사랑을 추구함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13장에서 사랑으로 모든 은사를 감당해야 할 것을 언급했는데 이에 대한 예로서 방언과 예언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교회의 하나됨을 가장 방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27-30절). 많은 사람들이 방언과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차례로 할 것을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은사는 아주 대조적인 면이 있었던 것입니다. 방언은 개인적인 반면 예언은 대중적이었습니다. 방언은 자신에 대한 것이었고 예언은 이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모든 은사의 기초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예였던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사랑에 대한 자세한 설명 후에 이 사랑을 기초로 은사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함이고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두 은사의 중요한 특징을 말해줍니다.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방언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피리와 거문고가 내는 생명없는 소리를 비유하고 분명하지 않은 나팔 소리를 예로 듭니다. 뜻을 알지 못하면 외국인에게 하는 말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는 자라면 통역하기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의 덕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원칙은 간단합니다. 교회,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덕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예언이 주는 유익으로 설명합니다. 3절에 나온 대로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예언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유익을 주는 것입니까? 여기서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예언이 미래를 점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잘 아시듯이 신자들의 미래는 분명합니다. 이 땅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든지 나그네의 삶이며 주님이 다시 오셔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삶에서 벗어난 예언은 예언이 아닙니다. 계시록을 공부했지만 그 내용이 주는 것이 바로 위로이며 권면이었습니다.

예언이 덕을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이 선포됨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위로와 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함입니다. 종말을 사는 자들이 하나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의 유익과 권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음 안에서, 종말이라는 상황에서 다 포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방언에 대해 바울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에 통역하지 않으면 덕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내용을 21절에서 이사야(28:11-12)의 말씀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끌려가 포로가 되어 이방 방언을 듣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방언이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증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교회가 방언으로 인해 이방인(앗수르)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약탈하며 심판한 모습처럼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역을 해서 방언의 바른 목적대로 덕을 세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음이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됨에 힘써야 합니다. 개인이 무너지고 포기하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뭔가 낫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없어야 합니다. 33절의 선언이 이 의미입니다. 화평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이것을 깨거나 거스를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34절은 마치 여자들이 아무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지만 문맥상 그러한 말이 아니지요? 예언과 방언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모습을 제재하는 내용입니다(28, 30절). 당시의 상황 상 여자에 대한 강조점이 있었지만 지금의 시대에서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교회를 허무는 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잠잠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하나됨을 허무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나의 주장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사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결국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됨을 지키는 모습은 억지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교회를 섬기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증거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알량한 이기심과 자존심 때문에 교회가 무너질 수 없고 신자들의 관계가 나빠질 수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내가 손해보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시고 자리와 위치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깨어질 때 안에 있는 보물이(고후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주님의 향기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고후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그래서 은사를 가진 자들의 책임과 사명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를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교회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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