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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7장

2019년 5월 2일

고린도후서 7장



*말씀읽기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말씀묵상

신자들이 믿음으로 산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도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부탁하듯이 하는 이야기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로서 드러나야 할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해내어 믿음을 보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선언은 불합리한 세상에서 하나님께 항변하던 하박국 선지자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라는 말은 좀더 쉬운 말로 바꾸면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1절의 의미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라는 사실에서 찾아야 합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6:16-18절까지 인용된 구약에 나온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과 성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되었다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신자입니다. 내가 뭔가를 이루어 내어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할까 말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를 영접하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러 비난과 불신이 있었던 상황이라 쉽지 않은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하여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모습입니다. 자신을 믿지 않고 비난하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근심하게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근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디도가 오면서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낙심하고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삶 속에서 믿음의 내용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문제와 근심 속에서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기준대로 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근심은 세상의 일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어떤 것입니까? 11절입니다.

간절하게 하며 변증하게 하며 분하게 하며 두렵게 하며 사모하게 하며 열심있게 하며 벌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희 자신을 깨끗함을 나타내게 했다고 합니다. 간절함과 변증함은 자신이 말씀대로 살지 못함에 대한 반성의 모습입니다. 분하고 두렵게 함도 회개하지 못함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입니다. 다른 것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해 낮아진 모습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됨으로 일어나는 거룩함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모습과 생각이 어디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회개로 이끕니까? 아니면 사망으로 이끕니까?(10절)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이렇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실전에서 잘 쓰기 위해 총기들을 갈고 닦습니다. 그런데 실전에서 흙이 묻고 더러워질까봐 쓰지 않는다면 말이 됩니까? 그런데 신자들이 믿음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작 믿음이 드러나야 할 때 숨깁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인지 아닌지 모르게 행동합니다. 믿음을 주신 이유는 믿음으로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약속하신 이유는 함께 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고난과 두려웠던 이야기를 계속 하는 이유는 그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위로와 기쁨의 기준과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들인지를 좀 알아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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