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 주언약교회
- 2024년 12월 30일
- 4분 분량
[말씀읽기]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말씀묵상]
눅15장은 아주 유명한 장입니다. 잃었던 것을 찾은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세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 100마리 중 한 마리를 잃었다가 찾아 함께 즐거워하는 장면, 여자가 10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었다가 찾아 이웃을 불러 기쁨을 나누는 장면, 두 아들 중 둘째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버지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회복의 기쁨은 7, 10, 32절에 말하듯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하늘에서의 기쁨이 있음을 말해 주는 비유입니다. 주제는 분명 회개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비유를 하게 된 이유입니다. 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죄인과 세리들이 가까이 왔고 이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비난을 했고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 비유를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왜 죄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말씀을 나누는가에 대해 비유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함께 하던 자들은 회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누가 봐도 죄인이고 스스로도 못난 자들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문제는 비유에서 잃었던 한 마리 양이나 한 드라크마를 주인이 찾았는데 이것이 왜 회개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 탕자의 경우는 이해가 되지만 첫째와 둘째의 경우 양이 돌아온 것도 아니고 드라크마를 찾고 주인이 잘못을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잃었던 것을 찾았는데 그것에 대해 회개한 것으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즉 주체가 직접 찾은 주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이 바로 잃은 것을 찾은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즐기며 나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는 예수님의 찾아 오심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애씀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주님의 친히 찾아가심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아들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성경의 원칙은 그게 아닙니다. 아들이 돌아온 것은 물론 회개의 내용 중에 하나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죽게 되니 살고자 수를 쓴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하죠. 당연한 모습입니다. 이것 역시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기에 받아 주시고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가 아들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었습니다. 그에게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살 바에 집에서 풍족한 품꾼같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품꾼은 고용된 일꾼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연히 착각이지요. 아직도 자신이 일하고 먹고 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돌아왔기에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서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고작 품꾼 중의 하나로 집에서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아들로서의 자리 회복입니다.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 잃었던 아들이라고 합니다. 왜 죽었고 잃었던 아들입니까?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마치 집의 주인처럼 살았던 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였고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즉 죄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아담의 본성을 가진 죄인입니다. 집 나가기 전부터 그런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를 아들로 계속 받아 주시는 은혜만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가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여전히 세리와 죄인과 마찬가지이지만 그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문제는 큰 아들의 자세입니다.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런 자를 받아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이게 그의 큰 오해입니다. 아버지가 말하듯이 늘 나와 함께 하였고, 내 것이 다 네 것인 줄을 모른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살고 있었는지를 모른 것입니다. 스스로 품꾼으로 살고 있던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 살아온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에 합당한 댓가를 가지고 산 줄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말합니다. 하늘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잔치입니다. 실제 잃어버린 자임을 보여 줍니다. 은혜만이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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