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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2018년 2월 21일 수요일 누가복음 17장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실족하게 합니다. 문제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실족하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받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만 상대방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상이 작은 자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를 연자맷돌에 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연히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형제가 죄를 범하고 회개하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하라고 하십니다. 완전한 용서를 말합니다.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 요구임을 제자들이 알았습니다. 곧바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달라는 간구를 하게 됩니다. 지금 자기들의 믿음의 상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믿음의 분량 문제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설명합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종에게 주인은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고 수종들고 난 후에 먹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고 사례하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명한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뭔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고 명령 앞에 순종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은혜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는 자가 바로 믿음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신자의 자리는 이런 믿음을 구하는 자리, 은혜를 깨달은 자리임을 보여줍니다.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나의 의가 드러나는 자리입니까?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는 자리입니까? 다음에 나오는 열 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는 장면에서 또 다른 믿음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는 명령을 받고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 사마리아인 한 명만 주님께 와서 감사한 것입니다. 당연히 제사장에게 갔어야 합니다. 그러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왔고 그에게 구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고침을 주신 자가 제사장이 아닌 예수님이심을, 그가 메시야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믿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집중되어 그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20절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임함에 대해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늘 가지고 있던 초관심사였습니다. 메시야사상을 가지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예수님을 통하여 뭔가를 기대했고 지금까지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종말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결코 상황적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임하게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을 믿고 순종하며 의지하는 삶을 사는 자인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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