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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2018년 3월 1일 목요일 누가복음 23장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시며 돌아가시고 장사되는 장면입니다. 여전히 행악자들의 모함과 악행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시면서 이 가운데서 악인들이 구원을 받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지만 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옥에 갇힌 자(바라바, 25절)가 놓임을 받고, 사형을 받은 한 행악자가 구원을 받습니다(43절). 또한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일어나는 현상을 보며 백부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47절).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두 부류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똑같은 모습을 보면서 한 쪽은 죽어 마땅한 자라고 보며 다른 쪽은 나를 구원할 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한 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보며 죽어 마땅한 자로 보는 것일까요? 자신에게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보니 더 이상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에게 있는 것까지 잃어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고발의 내용을 보면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기를 금하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다는 것입니다. 미혹했다는 말은 따랐는데 속았다는 것입니다. 왕과 그리스도, 즉 메시야인 줄 알았는데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이 고발에 대해 빌라도는 세 번씩이나 무죄를 밝히지만 결국 고발자들의 소리에 지고 맙니다. 무고히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고발의 내용이 신자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고 기대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고 삶이 나아지지 않음으로 인한 실망과 좌절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기도 합니다. 도우심을 바라며 노력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은 나의 만족을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깨닫고 항복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항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입니다. 신자는 이 예수님의 가신 길을 그대로 따르는 자들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구원하는 길이라는 말이 아니라 순종과 항복과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이것이 아닌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예수를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됨을 보여줍니다(25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우는 자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는 가운데서 죄인들을 향하여 마지막 경고를 주신 말씀입니다. 세상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있는 자들을 위해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일 수도 있고, 친인척,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멸망할 세상에서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애쓰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따르며 우는 자들이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오늘도 주신 사역들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와 구원을 기억하며 기쁨과 찬양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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