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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

최종 수정일: 3월 6일



[말씀읽기]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갓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그 때에 얼굴을 들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서지 못한다.

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말씀묵상]


시편 1편은 23편과 함께 신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암송하는 시편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간결하기도 하지만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복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여 모든 일에 형통함이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반면에 악인은 이 의인, 복 있는 자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며 여호와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시고 결국 망할 것임을 밝힙니다.


물론 여기서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밝히고 있지만 의인에게 이렇게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늘 복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이지 복을 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악인은 죄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입니다.


1-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기초를 보여 줍니다. 악인들이 존재하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악인과 함께 걷지 않고, 서 있지 않으며, 앉아 있지 않습니다. 걷다, 서있다, 앉다는 단어는 그에 따른 목적이 있음을 말합니다. 악한 꾀를 따라 걸으며 죄인의 본을 좇아 동참하며 오만한 자기 자랑의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들의 삶이 늘 자기 목적과 유익과 자랑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대신에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합니다. 그것으로 즐거워하고 늘 묵상하며 읊조립니다. 삶의 상황과 현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말씀으로 인한 즐거움과 말씀의 묵상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3절이 보여 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늘 물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15장에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와 같은 의미입니다. 즉 어디에 그 나무(가지)가 존재하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시냇가에 심겨졌다는 사실, 가지가 나무에 접붙여졌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나무는 당연히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잘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신자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노력의 산물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아닌 그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자인지가 드러나는 것이 신자의 열매이며 형통의 결과인 것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 무엇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삶의 노력의 결과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까?


4-5절은 악인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것은 근거가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않은 세상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은 이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애써 만들어낸 과시와 자랑과 자리들이 하나도 하나님 앞에 의미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의인의 모임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는 은혜만이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마22장에서 임금의 혼인잔치에 주인이 예비한 예복을 입지 않고 자기 것을 입고 들어온 자와 같은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그 근거가 자신이 아니라 은혜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의인들의 길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만이 준비하시고 베푸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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