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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장

2020년 8월 6일

에스겔 19장



[말씀읽기]

1 <애가> "너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불러 줄 애가를 지어라.

2 너는 이렇게 불러라. 너의 어머니는 누구였느냐 ? 사자들 가운데 엎드려 있으면서 젊은 사자들 틈에서 제 새끼들을 기르던 암사자였다.

3 그 새끼들 가운데서 하나를 키웠더니 젊은 사자가 되었다. 그가 사냥하는 것을 배워, 사람을 잡아 먹으니,

4 이방 민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함정을 파서 그를 잡아 갈고기로 꿰서, 이집트 땅으로 끌어 갔다.

5 암사자는 새끼를 기다리다가 희망이 끊어진 것을 깨닫고, 제 새끼들 가운데서 다른 것을 하나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6 그가 사자들 가운데서 어울리며, 젊은 사자가 되었다. 그가 사냥하는 것을 배워, 사람을 잡아 먹으며

7 그들의 거처를 모두 a) 파괴하니, 성읍들이 황량해지고 그의 으르렁대는 소리에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황폐해졌다. (a. 타르굼과 70인역을 따름. 히) 그가 알았다)

8 그러자 이방 민족들이 그를 치려고 사방 여러 지역에서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을 파서 잡아

9 갈고리로 그의 코를 꿰어 철창에 넣어서, 바빌로니아 왕에게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그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다시는 이스라엘의 모든 산에 들리지 않게,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10 네 어머니는 b) 네 포도원 안에 있는 물가에 심은 포도나무와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b. 두개의 히브리어 사본늘 따름. 히) 네 핏줄 안에 있는)


11 그 가지 가운데 가장 센 가지가 통치자의 홀이 되었다. 그 하나가 굵고 큰 가지들 보다 더 높이 솟았고 많은 가지 가운데서 우뚝 솟았으나

12 그 포도나무가 분노 가운데 뽑혀서 땅바닥에 던져지니, 그 열매가 동풍에 마르고, 그 튼튼한 가지들은 꺽이고 말라서, 불에 타 버렸다.

13 이제는 그 나무가 광야에, 가물고 메마른 땅에 심겨 있다.

14 그 가운데 a) 큰 가지에서 불이 솟아 나와 그 가지와 열매를 태워 버리니, 통치자들의 홀이 될 만한 튼튼한 가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것은 애가인데, 늘 부르는 애가가 되었다. (a. 또는 그 큰 가지 밑에서)


[말씀묵상]

19장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애가를 지어 부르라는 말씀을 따라 지은 애가입니다. 애가는 보통 죽은 지도자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노래이지만 19장의 내용은 아직 멸망하지 않은 이스라엘 방백들의 과오를 지적하며 그들의 죽음을 미리 확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에 대한 선포와 함께 반드시 찾아올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애가는 암사자와 포도나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사용해 이스라엘의 방백들의 실패와 멸망을 노래하는데 이 두 이미지는 모두 다윗 왕조와 연관돼 있습니다. 창49:9절에서 유다를 사자 새끼라고 묘사하면서 왕권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왕권에 대한 예언이지만 승리나 번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잡아먹고 서로를 헐뜯는 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려갔고(4절),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 아들들의 죽임을 당하고 눈이 뽑힘을 겪게 됩니다(9절).

10절에서는 다른 이미지인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인데, 이미지만 변화되었지 앞의 내용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어머니인 유다는 물이 풍성한 포도원에 심긴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포도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되고 강한 한 가지가 나와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가지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강한 가지는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고 열매는 바벨론의 침략(동풍)으로 마르게 되며 그 풍성함은 파괴되고 맙니다. 결국 광야에 심기게 되며 그 결과 다윗 왕조의 단절이 일어나게 됩니다. 더 이상의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부르는 애가이고 이 애가는 후에도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비참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강한 자가 더 이상 없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목적과 뜻을 이룰 자가 없다는 의미이지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룰 왕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는 인간의 능력과 목적이 완전하게 소멸되어야 드러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였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야 하는 죄인임이 드러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하다는 사실이 고백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목적과 능력과 계획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는지를 사라짐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가이며 이스라엘을 향한,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언제 우리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립니까? 세상의 가치를 잃을 때 슬퍼하며 웁니다. 하나님의 뜻이 허물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질 때 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허물어뜨리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애가를 부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던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14절)는 말씀은 저주의 말씀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약속이 성취된 나라에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무너지는 나, 무너져야할 나를 바라보며 애가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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