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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1장

2020년 7월 8일

요한삼서 1장



[말씀읽기]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말씀묵상]

요한이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쓴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당시에 많은 순회 전도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 잘 영접하며 대접해 준 가이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빕니다. 축복을 빈 말인데 적용이 잘못된 내용입니다. 이웃을 잘 대접한 것이 영혼의 잘됨의 모습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뭔가 좋은 일을 한 것이 밑거름이 되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적인 실천이 아닙니다. 성경읽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주일성수하고 등등이 영혼이 잘되어 복을 받는 길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잘됨은 이러한 율법적인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면 가이오의 특별한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는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로 행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진리는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혼의 잘됨은 세상적 가치를 목적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임을 보여 줍니다.

진리를 위하는 삶,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삶은 예수를 믿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얻는 유익을 목적하지 않는 것입니다(7절). 수많은 신자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목적한다고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의 수고가 영혼의 잘됨이 아닌 육적 삶의 잘됨을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닌지 늘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위한 삶,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이 성도의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에 으뜸되기를 좋아하고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않았고 악한 말로 비방하는 디오드레베가 나옵니다. 당연히 세상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몇 번의 충고가 있었지만 듣지 않고 자신의 우월함이나 대표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혹은 이단으로 빠져서 자기 주장이 강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사도 요한의 말을 듣지 않고 교회 내에서 진리가 기준이 아닌 인간이 기준인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접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요즘 황제적 지위를 누리는 지도자들에 대한 보도를 보게 됩니다. 으뜸이 된 자들의 모습입니다. 대접을 할 수도 없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는 자리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교회가 지위로 물들어 버린 것입니다.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선임이 됩니다. 으뜸이 되려는 것은 이렇게 진리를 좇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11절).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늘 부족한 자들일 뿐 아니라 은혜와 긍휼만으로 서있는 자들입니다. 주님만이 으뜸이시며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나를 버리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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