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29-144

2020년 9월 29일

시편 119:129-144



[말씀읽기]

129 a) 주의 훈계가 너무 놀라워서, 내가 그 훈계를 지킵니다. (a. 129-136절은 매 절마다 페로 시작 됨)

130 주의 말씀을 열면, 거기에서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도 깨닫게 합니다.


131 내가 주의 계명을 너무나도 시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132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시듯이 주의 얼굴을 내게로 돌리셔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33 내 걸음걸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떠한 악함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134 사람들의 억압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그러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겠습니다.

135 주의 종에게 주의 밝은 얼굴을 보여 주시고,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136 사람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않으니, 내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립니다.

137 b) 주님, 주님은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올바르십니다. (b. 137-144절은 매 절마다 차데로 시작 됨)

138 주께서 명하신 훈계는 의로우시며, 참으로 진실하십니다.

139 내 원수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리니,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

140 주의 말씀은 정련되어 참으로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는 당하지만, 주의 법도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하고, 주의 법은 진실합니다.

143 재난과 고통이 내게 닥쳐도, 주의 계명은 내 기쁨입니다.

144 주의 훈계는 언제나 의로우시니, 훈계로 나를 깨우쳐 주시고, 이 몸을 살게 해주십시오.


[말씀묵상]

시인의 마음을 계속 살피고 있지만 끊임없이 고백하는 큰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간절한 마음입니다. 여기에는 순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고 외부로부터 방해를 받음으로 생기는 좌절감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각 연마다 늘 표현되는 내용은 사모함과 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총 22개 연(히브리어 알파벳 수)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연마다 말씀에 대한 시인의 감정, 결단, 고뇌, 희망, 찬양, 기원, 선포 등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시인의 마음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129절에서 주의 증거들의 놀라움으로 인해 이를 지킨다는 고백을 합니다. 놀라움은 초자연적인 특성을 의미하는데 바로 시인을 이끌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내가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인도이며 역사임을 보여 줍니다. 그 모습을 130절에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입니다. 131절의 헐떡이다는 단어도 흡입하다, 개걸스럽게 먹다, 삼키다, 갈망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살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일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혹시 멈춰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시인이 보여 주는 것은 자신에게 어려움이나 고난이 보일수록 말씀에 대한 강한 사모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이는 자연적인 모습이어야 합니다. 시인도 이를 위해 은혜를 간구합니다. 세상을 향하거나 외부의 영향으로 다른 길을 가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136절의 간구는 광야시대에 제사장인 아론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도록 한 내용과 비슷합니다(민6:24-26).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며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만이 아닌 주님 오실 때까지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고 확인해야할 복이 주의 얼굴을 비추셔서 은혜와 평강을 주심, 즉 주의 함께 하심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연(137-144절)에서는 멸시, 환난, 우환이 시인에게 있지만 주의 의로우심으로 감당해 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의로우심, 성실하심을 고백하며 의지한다는 말은 나는 가만히 있고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을 통하여 그의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 내시는 것도 있습니다. 구원을 간구하지만 그 속에 말씀에 대한 신뢰가 숨어 있습니다.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온실 속에서 살게 해달라고 합니다. 모든 우환과 질고가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시고 벗어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인도하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간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역대상 4장에 야베스라는 사람이 기도한 내용으로 책이 나왔는데 당연히 본의를 오해한 내용입니다. 지경을 넓히고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역대기는 나라를 잃고 포로 생활을 한 후에 돌아와서 쓴 책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족보를 서술하는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긍휼, 은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한 개인의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야베스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가 베풀어진, 지금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예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부자되어 편안하게 살게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당연히 자신의 죄악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러한 모습들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의지함을 배우고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말씀과 동떨어진 곳인지 고민하며 갈등하도록 하십니다. 말도 안되는 원수들을 붙이십니다. 그래도 말씀을 잊지 않고 즐거워하며 고백하며 살도록 하십니다. 오늘도 이러한 고백과 찬양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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