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6장

2021년 6월 22일

이사야 16장



[말씀읽기]

모압의 절망 상태

1 모압 백성아, 예루살렘의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조공으로 보내라. 셀라에서 광야를 거쳐, 나의 딸 시온 산으로 조공을 보내라.

2 있을 곳이 없어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털린 둥지에서 흩어진 새끼 새들처럼, 모압의 여인들이 아르논의 나루터에서 헤맨다.

3 그들이 유다 백성에게 애원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지 말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여 주십시오. 뜨거운 대낮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처럼, 우리가 그대의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피난민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곳에 우리를 숨겨 주십시오.

4 우리가 이 땅에서 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폭력이 사라지고, 파괴가 그치고, 압제자들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5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와 신실과 사랑으로 그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옳은일이면 지체하지 않고 하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6 유다 백성이 대답한다. '우리는 모압이 교만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들이 매우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여 화를 잘 내지만, 사실 그들은 허풍뿐이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다.'

7 그러면 모압 백성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못이겨서 통곡할 것이다. 길하레셋에서 늘 먹던 건포도빵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 것이다.

8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원이 황무지가 되다니!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즐겨 마시던 포도주의 산지가 아니던가! 한때는 포도나무 가지가 저 멀리 야셀에까지 뻗어 나가고, 동쪽으로는 광야에까지 퍼져 나가고, 서쪽으로는 그 싹이 자라서 사해 너머로까지 뻗어 가더니!

9 야셀이 울듯이, 내가 통곡한다. 말라 비틀어진 십마의 포도나무를 두고 통곡한다. 헤스본아, 엘르알레야, 나의 눈물이 너를 적신다. 여름 과일과 농작물을 거두는 너의 흥겨운 소리가 너에게서 그쳤구나.

10 "이제 기름진 밭에서 기쁨도 사라지고 즐거움도 사라졌다. 포도원에서 노랫소리가 나지 않고, 기뻐 떠드는 소리도 나지 않고, 포도주틀에는 포도를 밟는 사람도 없다. 내가 그 흥겨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다."


11 모압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수금 줄이 튀듯 떨리고, 길하레셋을 생각하니,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12 모압 백성이 산당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그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3 이것이 전에 주께서 모압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14 그러나 이제 주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삼 년 기한으로 머슴살이를 하게 된 머슴이 그 햇수를 세듯이, 이제 내가 삼 년을 센다. 삼 년 안에 모압의 영화가 그 큰 무리와 함께 모두 능욕을 당할 것이며, 남은 사람이라야 얼마 되지 않아, 보잘 것이 없을 것이다."


[말씀묵상]

모압에 대한 심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거역하며 만들어진 민족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 자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모압에 대한 심판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가 크냐 작으냐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이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압의 모습이 계속 드러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모압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1절을 보면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라고 합니다. 이 땅의 통치자는 유다의 왕을 말합니다. 유다의 왕은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던 자들에게 하나님만이 자신의 지도자, 왕이심을 인정하는 자리로 오라는 것입니다. 자아가 깨지고 자기부인의 자리로 오도록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초대는 실은 엄청난 반전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압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죄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신23:3절에 모압과 암몬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을 발람을 통하여 저주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압에게 지금 구원의 길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본문 3-4절을 보면 유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가 피할 수 있게, 원수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합니다. 망한 자들이, 가능성이 없는 자들이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구를 한다는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잘 아는 대로 모압 여인인 룻이 그랬습니다. 완전히 망한 자이지만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의 기준과 살아온 가치관으로는 선택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하여 나오미의 하나님을 택하게 되고 결국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영영히 들어올 수 없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불가능하던 자들, 죽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나의 능력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로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6절 이후는 모압의 교만함에 대한 애통함이 나옵니다. 원래 이러한 자들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결과가 주어져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심판이나 고난이 없으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광야같은 삶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하는 자는 은혜를 입은 자이지만, 계속해서 자기의 삶을 구축해가는 자는 은혜가 없는 자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 것 없이 되리라고 했는데 당연히 은혜를 입은 자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망해야 은혜를 알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물론 계속 하나님은 일해 오셨습니다.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살게 하셨습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고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심판을 통하여 은혜가 보이고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구원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에게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무언가가 덧붙여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새로운 자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구원의 은혜만이 내 안에 채워져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신자들이 고백해야 유일한 내용입니다. 오늘도 구원을 찬양하며 나의 나됨이 은혜임을 고백하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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