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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장



[말씀읽기]


1 <욥의 대답> 욥이 대답하였다.

2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여 주니, 고맙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도와주다니!

3 너는 우둔한 나를 잘 깨우쳐 주었고, 네 지혜를 내게 나누어 주었다.

4 그런데 누가, 네게 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거냐?

5 a)죽은 자들이 떤다. 깊은 물 밑에서 사는 자들이 두려워한다. (a. 5-14절에 빌닷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빌닷의 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


6 b)스올도 하나님께는 훤하게 보이고, c)멸망의 구덩이도 그분의 눈에는 훤하게 보인다. (b. 또는 무덤, 또는 죽음. c. 히) 아바돈)

7 하나님이 북쪽 하늘을 허공에 펼쳐 놓으시고, 이 땅덩이를 빈 곳에 매달아 놓으셨다.

8 구름 속에 물을 채우시고, 물이 구름 밑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게 막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9 하나님은 보름달을 구름 뒤에 숨기신다.

10 물 위에 수평선을 만드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신다.


11 그분께서 꾸짖으시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흔들린다.

12 능력으로 바다를 정복하시며, 지혜로 d)라합을 쳐부순다. (d. 9:13절의 주를 볼 것)

13 그분의 콧김에 하늘이 맑게 개며, 그분의 손은 도망 치는 바다 괴물을 찔러 죽인다.

14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분이 하시는 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는 것도 가냘픈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그분의 권능에 찬 우뢰 소리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말씀묵상]


빌닷의 충고에 대해 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립니다. 힘없는 자, 기력 없는 팔, 지혜없는 자로 자신을 비하하면서 그런 자에게 참으로 똑똑한 말을 하는데 그게 하나도 의미가 없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서 5절부터 욥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러한 욥의 주장은 빌닷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빨리 무릎을 꿇고 회개하라는 충고에 분명한 자기 의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그 속에는 엄청난 역사들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지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잘못이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큰 하나님의 섭리로 이끄시고 계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둘의 주장이 비슷한 이유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 기준과 적용에 있어서 완전히 상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온전하신 분인데 너에게 일어난 일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는 주장에 반해 욥은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 크고 깊은 것이 있다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리 봐도 잘못을 가지고 징벌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욥기의 전제가 의인인 모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에게 원인이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은 이 사실을 알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친구들은 경험하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사고와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욥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구름잡듯이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단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일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중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계적일 수는 없습니다. 욥기가 가르치려고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세상의 법칙대로 움직이도록 하고 떠나 있는 신관입니다. 인본주의의 바탕이 되는 철학사상입니다. 세상은 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인과율에 의해 모든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원칙을 잘 알아 살아가는 것이 지혜이며 능력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분명 일하신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세상의 원리를 많이 안다 한들 다 파악된 것이 아닙니다. 욥이 설명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친구들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절에 자연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지혜도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며 그것도 속삭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깨우친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헤아리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누구도 잘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흔히 이 알 수 없다는 사실로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맹신한다는 것이죠. 무식하게 믿는다고 합니다. 인과율에 붙잡혀 내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롬11:33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모르는 것이 비판이나 책망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미련함이 있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훼손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찬양과 감사와 경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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